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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늦가을과 함께 생각나는 커플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싫어하는 분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저도 로맨틱코미디장르를 너무 좋아해서 시간적으로 철 지난 작품들을 다시 보는 취미가 있습니다.
로코를 즐겨하는 이유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남주, 여주의 티키타카인데 케미가 잘 맞는 남녀 주인공의 연기와 찰진 극본이 맛깔난 촬영과 편집으로 이어진 작품들을 보면 오랫동안 연애 침체기에 있던 사람의 죽은 연애세포도 되살릴 것 같은 희열을 맛보게 됩니다.
이런 티키타카를 중심으로 당장 생각나는 작품을 떠올려 보면 런온, 멜로가 체질, 연예 빠진 로맨스가 생각납니다. 정말 재미있는 작품들인데 이런 티키타카 로코의 원조랄까? 로코의 바이블이라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작품이 바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아닐까 합니다.

영화정보
개요 : 1989. 11. 18일 개봉(2016. 12. 28 재개봉) / 15세 관람가 / 로맨스 코미디 / 미국 / 러닝타임 96분 / 콜롬비아 배급
감독 : 롭 라이너 각본 : 노라 애프론
출연 : 빌리 크리스털(해리), 맥 라이언(샐리), 캐리 피셔(마리), 브루노 커비(제스)
음악 : 마크 샤이먼, 해리 코닉 Jr

 

남녀 사이의 우정이란

로코가 좋은 이유는 무겁지 않다는 점일 겁니다. 언제부터 그랬냐고 묻는다면 명확하지는 않겠지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형식이 예전에 이런 형식이 있었나 생각해 보면 딱히 생각나는 작품이 없을 정도로 이 영화는 매우 어썸하게 불필요한 무게감 없이 가볍고 발랄합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나는 첫씬(대학교 졸업 후 뉴욕으로 떠나는 동행)부터 너무나 일상적이고 가벼워서 남녀 사이이지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현실 첫 만남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좁은 차 안에서 동행하며 시작되는 티키타카의 주제는 바로 '남녀 사이의 우정'.
이성적인 관심이 1도 없는 이들 사이의 대화는 격렬했지만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었고 해리는 있을 수 없다는 편, 샐리는 가능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늘 그렇듯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냉랭한 이미지만을 서로에게 남긴 채 헤어졌다 만났다를 거쳐 차츰 가까워지는 둘 사이를 재미있게 그려가는데 우연이 반복되고 그사이 서로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보내며 실연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친구"라는 암묵적 관계 설정에 어정쩡한 분위기에 빠지게 되는 둘 사이는 위기를 맞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간. 해리의 고백을 통해 연인으로 결실을 맺으며 10년 우정의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남녀 사이의 우정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로 시작된 팽팽한 티키타카에 승자와 패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긴 시간 동안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하며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깨달아 이뤄진 사랑이 무엇보다 값진 것임을 얘기하는 이 영화는 로코의 바이블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늘 계속되는 그들의 티키타카

 

환상의 조합이 만든 로코

우리나라와 악연으로 논란이 있던 맥 라이언이지만 이 영화는 단역과 조연에 머물고 있던 맥 라이언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을 만큼 샐리 올브라이트로서 맥 라이언의 사랑스러움은 최고였는데 "어바웃 타임"에서의 레이철 맥아담스를 생각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리역의 빌리 크리스털은 또 어떻고요? 요즘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영화에서 보이듯 오버 없는 스탠딩 개그처럼 점잖으면서도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그의 재치 넘치는 입담은 아카데미 시상식 단골 사회자로 인정받았을 정도입니다.
이런 남주, 여주의 탁월한 연기에 노라 애프론의 각본이 옷을 입히니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한 감각의 로코가 만들어졌다 생각됩니다.
이때부터 맥 라이언은 노라 애프론의 페르소나가 된 듯하고 이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유브 갓 메일(1998), 지금은 통화 중(2000)의 작품에서 계속 호흡을 함께하게 됩니다.
맥 라이언을 아주 속속들이 잘 알아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한 각본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라 애프론의 작품에서 맥 라이언은 빛나는 배우였습니다.

 

명장면 오르가슴 Scene

함께한 조연들도 관객들도 얼음으로 만들었던

'명불허전'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듯싶습니다.
지금까지도 오마주 되거나 패러디를 통해 많은 배우들이 비슷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줬던 맥 라이언의 연기만큼 충격적으로 사실적인 오르가슴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극찬을 받은 명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달아오르다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절정을 끝으로 현타에서 씩~웃어주며 샌드위치를 다시 먹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말문이 막힌 채 그대로 얼음이었는데 옆자리 할머니가 웨이터에게 주문을 합니다. "나도 저 여자가가 먹는 걸로 줘요~" 이건 뭐 이 영화의 대박 포인트였죠.
참고로 이 할머니는 감독이었던 롭 라이너 감독의 어머니였는데 어머니가 대본을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 대사를 감독이 제안하여 직접 출연까지 하게 만든 비하인드가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것들

뛰어난 각본과 배우들의 찰떡같은 명연기외에도 이 영화를 로코의 바이블로 격상시킨 또 하나의 중요 포인트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OST였습니다.
뉴욕의 가을과 겨울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속 장소들과 해리와 샐리의 변화되는 감정선과 티키타카에 맞춘 음악은 너무나 트렌디한 감정 변화를 이끌어 주었는데요. 특히나 영화 삽입곡으로 널리 알려진 해리 코닉 Jr. 의 라이트 한 재즈 스코어는 영화 자체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샐리가 오르가슴 연기를 선보였던 장소인 Katz's delicatessen 은 샌드위치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영화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며 광고효과를 얻어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에 꼭 한번 들려야 하는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니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저도 뉴욕에 가면 꼭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즈 델리 이곳에 샐리가 앉았던 자리가 있음

누구나 한 번은 그때 나눴을 것 같은 얘기인 "남녀 사이의 우정"을 톡톡 튀는 발랄한 감성으로 풀어냈던 이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기억하며 우리에게도 마음 한 구석 자리 잡은 빛나던 그때의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길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