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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세대의 전설. 스포츠 만화의 교본과 같은 신화.
불꽃같은 청춘을 추억하는 이들에게 영원히 회자되는 불멸의 작품인 슬램덩크가 27년 만에 새로운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왔습니다.
기억하는 내용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95년도 작품이지만 지금도 가슴 두근거리는 명대사와 잊히지 않는 장면이 가득한 슬램덩크의 당당한 귀환에 만감이 교차하며 마법에 걸린 듯 예매와 함께 극장으로 달려가 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만화는 본 경험이 없는 아내와 역시 만화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잘 알고 있고 일러스트를 전공으로 애니 덕후인 딸과 함께 중꺾마로 소환된 전설을 감상한 소감을 정리해 봅니다.

그때 우린 모두가 강백호였다

더 퍼스트 이름에 어울리는 작화

개인적으로 작화 퀄리티에 매우 진심이기 때문에 처음 단행본으로 접했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터치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시리즈에는 많이 실망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노우에 다케히코 자신도 만족할 만큼의 애니메이션 퀄리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90년대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지금 봐도 아니 오히려 그때의 상상력이 지금의 과학 수준을 가뿐히 넘는 내용들과 이를 실제 있을 법하겠다는 착각을 현실로 만드는 작화의 디테일은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과 강력한 힘을 느끼게 했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문화 강대국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은 무서운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슬램덩크는 스포츠만화로서 대히트를 기록했는데 스포츠 중에서도 템포와 작화 난이도가 최상급인 농구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니 그 당시 수준으로서는 현실감 있는 퀄리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어서 뭐 그럭저럭 인기에 힘입어 공전의 히트를 이어나갔지만 이노우에 다케히코 본인 역시 대단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감독으로서 연출과 각본까지 맡으며 2D만이 아닌 2D와 3D를 결합하고 모션캡처와 셀애니메이션까지 모두 혼합한 형태를 보여주었는데 감독의 특기인 회상장면의 플래시백 (주로 송태섭 씬)은 2D로 하고 경기 장면에서는 모션캡처 기반의 3D와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혼합하는 기법을 보여주고 이런 장면들이 서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연출적인 면과 터치로 보강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디테일로 따지자면 할리우드에 비해 배경처리는 미흡한 부분이 눈에 띄지만 이 부분은 역시 제작비와 자본에서 오는 차이임을 감안한다면 무난히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인트로의 송태섭, 서태웅, 강백호, 정대만, 채치수가 스케치로 한 명 한 명 그려지며 셀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이는 장면과 송태섭의 어린 시절 그의 형인 송준섭과 1:1 대결을 3D 롱테이크로 보여주던 장면에서는 각각의 특성을 잘 살려낸 연출이라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새로운 것 그리고 없어진 것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새로움이라면 각 캐릭터가 볼륨을 충분히 입은 상태의 3D로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표현으로 재탄생되었다는 점인데 원작 만화의 한 컷에 상상해야만 했던 움직임이 기존 애니메이션에서는 둔감한 움직임으로 감동이 줄었다면 이번 모션캡처 기반의 3D화 된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원작 만화의 상상에만 머물렀던 움직임에 더해 비로소 터프한 역동성을 살리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없어진 것은 만화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독백 컷과 각 경기의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해설, 설명 장면 등이 영화에서는 과감하게 삭제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영화가 주는 농구의 스피디한 템포를 살리는 데는 긍정적 부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송태섭의 개인 서사가 템포도 늦고 분위기도 무겁기 때문에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산왕과의 경기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여기에 기존 해설, 설명 씬들이 원작 그대로 적용되었다면 지금처럼 스피디한 감동이 많이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왜 송태섭인가?

무엇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가장 큰 변화는 시점의 변화입니다.
원작 만화가 강백호 시점으로 개인 서사와 경기 전개가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명랑하고 좌충우돌하는 분위기의 전형적 청춘물이었다면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송태섭 시점으로 풀어내어 원작에서는 거의 다룬 적 없었던 송태섭의 개인 서사가 전개되면서 팀의 가드로서의 위치와 더불어 형을 대신하고자 했던 일종의 책임감과 그리움이란 장치까지 더하며 작품 전체에 기존에 없었던 장중한 무게감까지 더해주었습니다.
왜 송태섭인가?를 생각해 보면 원작에서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 개인 서사의 설명이 부족했는데 이 부분을 건드려 주면서 실제 농구에서도 그렇듯 작품의 균형을 잡은 것이란 생각이 들고 이 점은 이노우에 작가의 단편인 피어스(Pierce)에서 이미 공개된 설정을 대부분 그대로 적용했듯이 원작을 마무리한 이후 작가로서의 생각의 변화 또는 아쉬움 그리고 연륜이 깊어짐에 따라 캐릭터에 대한 추가적 아이디어에 따른 원인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송태섭은 불완전한 캐릭터였고 다른 캐릭터에 비해 설명도 부족했었는데 그의 서사가 보완되면서 그의 불안정한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겼고 이를 넘어서려는 그의 분투에 더해진 한나 매니저의 No.1 가드 손바닥 글씨에서는 소름 돋을 정도의 쾌감을 느꼈으니 송태섭을 전면에 내세운 감독의 의도는 성공한 셈입니다.

처음이자 끝? 아니면

이번 작품은 송태섭 개인의 서사와 전국대회에서 북산의 두 번째 경기였던 전국 최강 산왕과의 경기만 집중해서 보여줍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라는 제목은 이노우에 작가의 어떤 의도를 보여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서처럼 나머지 4명의 캐릭터에 대한 좀 더 깊은 에피소드를 하나씩 세컨드, 써드 하는 식의 시리즈로 나가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원작에서 캐릭터에 대한 서사를 다루기는 했지만 그 내용이 깊이가 있는 내용 정도는 아니어서 얼마든지 디테일한 설정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한 이노우에 작가도 원작을 완성할 때와는 다르게 아쉬운 부분에 대한 미련이나 추가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작품화 고민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달랑 이 작품이 끝이라면 너무나 아쉽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열기 그리고 이 작품을 처음 대하는 1020세대들의 새로운 팬덤도 매우 긍정적이라 억지로라도 연장해 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추억팔이 그 소중함에 대하여

누군가는 그저 또 하나의 추억팔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추억팔이 자체가 명확하게 마케팅에 굴복한 그저 그런 돈벌이 수단으로 치부되어 온 것이 사실이기에 추억을 되살린다는 자체가 전설에 먹칠한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일인 겁니다.
추억이란 따뜻하고 좋았던 기억을 되살린다는 좋은 면이 있지만 만약 지금이 더욱 좋고 할 일이나 익사이팅하고 펀한 그 어떤 것들이 있다면 옛것이 파고들 틈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30년이나 지나버린 옛 작품을 소환하는 것이 지금 얼마나 주목할 작품이 없는 것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는 문제지만 지금의 현실처럼 기회는 없고 실패가 곧 영원한 추락으로 재활할 용기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우리들에게 되살아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명제를 가슴 뛰는 애니메이션으로 현실화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다시 열광하는 3040세대들에겐 분명한 이유와 소중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