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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물이 무섭습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고 게다가 수영도 어느 정도 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차가운 수온, 물먹는 고통과 익사, 상어 같은 무시무시한 어류. 뭐 두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 최고는 칠흑같이 어두운 심연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합니다.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뭔가 있을 것 같고 뭔가 있다면 인간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느껴지는 공포는 머릿속을 더욱 불쾌한 상상으로 뒤덮습니다.

어비스(ABYSS:심연)는 이런 바다에 대한 으스스함을 정면으로 다뤘던 영화인데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가 푹 빠져버린 기억이 납니다. 그때 기억을 살려 영화가 전달했던, 인류가 구원받은 이유를 떠올리며 몇 가지를 말해보고자 합니다

포스터는 존 카펜터 감독의 The THING 생각이 난다

영화정보

개요 : 1990. 7. 7일 개봉 / 12세 관람가 / Sci-fi, 모험 / 미국 / 러닝타임 : 극장판 145분, 확장판 171분 / 20세기 폭스 배급

감독 : 제임스 카메론

출연 : 애드 해리스(버질), 메리 엘리자베스 매스트란토니오(린지), 마이클 빈(코피), 킴벌리 스콧(리사) 등

수상내역 : 62회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16회 새턴 어워즈 최우수 감독상

 

바다에 진심인 감독의 영화

이 영화의 감독은 제임스 카메론입니다. 얼마 전 개봉된 최근작 <아바타:물의 길>이 관객수 천만을 돌파했을 만큼 환상적인 CG로 판도라 행성의 바다를 아름답게 그려냈는데 그가 바다에 진심인건 필모그래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98 타이타닉, 2003 심해의 영혼들, 2005 에이리언 오브 더 딥, 2011 생텀, 2017 딥씨 챌린지, 2022 아바타 : 물의 길까지 영화와 다큐를 가리지 않고 바다에 관한 깊은 애정으로 끊임없는 호기심을 이어가고 있을 만큼 카메론 감독이 바다에 진심인 것은 오래된 일이며 그 모든 여정의 시작이 바로 이 영화 <어비스>라 할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다 생각합니다.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스토리

어비스를 첨 봤을 때 대략 냉전시대의 산물인 미국과 소련의 대결을 그린 액션 영화인줄 알았고 중반까지도 영화는 미 핵 잠수함 USS 몬태나 호의 의문의 심해 추락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미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과 민간 시추시설 '딥 코어'의 승무원들의 활약상으로 플롯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심해의 존재 NTI (Non-Terrestrial Intelligence:비지상 지성체)의 등장으로 소련으로부터 핵탄두를 지키기 위해 핵폭발을 유도하려는 네이비실과 이를 저지하려는 승무원들의 갈등 속에서 NTI는 핵폭탄의 존재를 눈치채고 네이비실은 물론 인류의 존재까지도 소멸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전개에서는 놀라운 특수효과를 동반한 Sci-fi 영화로 변신하며 버질이 폭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린지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면서 아직 희망이 있는 인류를 어여삐 여겨 인류 소멸 계획을 거두는 엔딩에서는 이 영화가 휴머니즘과 사랑을 다룬 감동의 서사까지 보여주게 됩니다.

한마디로 근래의 한류 드라마 같이 없는 게 없는 종합선물세트 같지만 당시 할리우드로서는 보기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어비스가 망한 이유

감독 본인의 CG 끝판왕 아바타를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그가 연출한 작품들에서 고집스럽게 추구해 온 완성도 높은 특수효과는 늘 감탄을 자아냅니다.

어비스는 1989년작입니다. 하지만 높아진 지금 눈높이로 감상해도 어색하거나 촌스런 부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정작 <아바타 : 물의 길>이 혹평을 받는 이유는 단조로운 시놉시스 때문인데 어비스는 다소 호흡이 길긴 하지만 탄탄한 스토리, 긴장감 있는 갈등구조와 남녀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까지 잘 버무려져 거장으로서의 초기 재능이 번뜩였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결과적으로 흥행에 실패하였으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흑역사로 남게 된 영화입니다.

영화의 어느면을 평가하더라도 혹평보다는 호평이 우세한 영화인데도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은 이유는 같은 시기 어비스 보다 먼저 개봉한 아류작 때문이라 말들 합니다.

이상하죠? 아류작이 어떻게 원작보다 빨리 개봉할 수 있었는지... 아무튼 할리우드에서는 아주 신선했던 어비스의 시놉, 즉 바다에서 괴이한 존재와 조우하에 벌어지는 메인 시놉은 사전 유출되어 경쟁관계에 있던 영화사들에 의해 '레비아탄, 딥 식스, 해저 에일리언' 같은 아류작으로 먼저 개봉되어 혹평을 받게 되니 정작 완성도 높게 제작되어 개봉된 어비스는 관객들에게 그저 그런 영화로 인식되어 쳐다보지도 않게 되는 어이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아류작에서 미지의 존재를 크리처와 괴물로 상정하여 어비스의 NTI와는 전혀 달랐음에도 결과적으로 같은 취급을 받아 카메론 감독과 특수효과를 담당한 스텝들을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아바타의 시각으로 본다면

터미네이터 2에서 감탄에 감탄을 일으킨 T-1000의 액체 금속 CG는 사실은 어비스에서 먼저 시도된 물 형상 CG인데 영화 개봉당시 이 기술을 만들어낸 카메론의 고집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물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CG

아바타 제작당시도 3D 기술은 있었지만 카메론이 요구하는 수준은 아예 레벨이 다른 기술을 요구했고 이에 많은 기기를 새로 제작하거나 변형시켜야 했기 때문에 어비스에서도 제작사나 스텝들에게 이런 요구는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아바타도 존재할 수 있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때 카메론 감독의 의욕은 과하게 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때의 배우들은 카메론의 냉혹한 연출 욕심에 장시간 물속에서 연기를 하는 굉장한 고통과 불만이 있었고 특히나 여주였던 메리는 극 중 저체온과 호흡정지 설정 때문에 실제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이에 격분한 애드 해리스와는 주먹다짐까지 갔다는 썰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때의 경험과 노하우가 이어져 아바타에서는 보다 나은 디렉션과 촬영 준비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물속 연기를 이끌어 냈다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봐도 뭉클한 애드 해리스가 폭탄 제거를 위해 심연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를 함께 느낄 수 있었고 죽음을 기다리며 전한 진심의 대사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어"라는 꺼져가는 2비트의 애절한 사랑고백은 해피엔딩과 인류 구원의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된다는 점을 마지막 스포일러로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