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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 용의 출현>은 지난 2015년 개봉하여 1700만 관객 동원이란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긴 김한민 감독의 <명량 : 회오리 바다>의 후속작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전사를 다룬 3부작 중 2편입니다. 시기적으로 명량해전은 1597년, 한산대첩은 1592년으로 <한산 : 용의 출현>은 <명량 : 회오리 바다> 이전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산대첩은 임진왜란의 전황을 바꾸어버린 엄청난 승리의 역사로 여러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이번 작품은 특히 그동안 다른 작품들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던 사실이 짧지만 비중 있게 포함되어 개인적으로 뭉클하고 고마웠었는데 오늘은 그중 3가지 사항을 꼭 함께 짚어봤으면 합니다.

한산에서 이순신 장군 역할의 박해일

영화정보

개요 : 2022. 7. 27 개봉 / 12세 관람가 / 액션, 드라마 / 대한민국 / 러닝타임 : 129분 / 롯데 언터테인먼트 배급

감독 : 김한민

출연 : 박해일(이순신), 변요한(와키자카), 안성기(어영담), 손현주(원균), 김성규(준사), 박지환(나대용) 등

누적관객 : 726만 명

 

육군 이순신과 녹둔도

첫 번째는 수군이 아닌 육군 시절의 이순신입니다. 흔히들 이순신은 "Born to be 수군"으로 알고들 계시겠지만 이순신의 시작은 육군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왜군과의 일전을 앞두고 회의와 고뇌에 힘들어하던 이순신이 어느 날 꿈을 꾸는데 눈밭에서 말달리며 적을 추격하던 이순신 앞에 철옹성이 나타나 가로막히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화살 세례를 받는 장면으로 "녹둔도"라는 자막으로 지리적 배경이 설명되었습니다.

녹둔도는 두만강 하구 그러니까 함경도에 속했던 우리의 옛 영토로서 섬이었지만 여러 차례 개간을 통해 육지화되었고 지금은 아쉽지만 러시아의 영토입니다.

사실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임명되기 전 조산보라는 곳의 만호로서 임무수행 중이었으며 녹둔도는 조산보와 가까워 두만강을 건너 우리 백성들이 경작하던 비교적 비옥한 경작지여서 여진족으로부터 방어해야 하는 부가적 임무 수행지이기도 했습니다. 이순신은 만호로서 적은 병력이지만 침략한 여진족을 맞아 분투하였지만 패하였고 이후 불리한 정황을 참작받아 백의종군하여 심기일전으로 여진족을 몰아내고 공적을 세우기도 한 의미 있는 장소였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바다 위의 성"이라는 모티브를 얻는 장소로 감독의 상상력과 연결되어 짧게 그려지고 있지만 이순신 장군이 수군으로서 전라좌수사, 삼도수군통제사 이전에 전국을 돌며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던 경험이 풍부했음을 짚어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백의종군도 이때 벌써 전적이 있었음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전라도를 지키지 못했다면

<한산 : 용의 출현>에서는 그동안 다소 소홀했던 중요한 배경을 잘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군의 전라도 협공 작전입니다.

극 중 와키자카는 책사 구로다 칸베에의 힘을 빌어 고바야카와와 함께 전라도 협공이란 전략을 구사한 것인데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해전에서는 이순신에 연전연패하여 쉽지 않음을 깨달은 일본은 전라좌수영의 본진이 있던 전라도를 육지에서 공격한다면 수월한 본진 공략이 될 거라 판단하여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사실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의 전략은 속전속결로서 조선의 왕인 선조를 잡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장 빠른 길로 한양에 이르는 전략을 구사했고 이 때문에 전라도와 조선 수군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으나 예상치 못했던 이순신의 수군이란 거대한 암초와 부딪히게 되면서 전라도 공략이란 방법을 강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전라도가 어떤 지역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대규모 평야지대로 지금도 그때도 핵심 곡창지대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인데 만일 전쟁 초기에 전라도를 왜군에 넘겨주었다면 전쟁양상은 크게 바뀌었을 것임에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산에서도 분명하게 그 점을 짚고 묘사하고 있어 고증적 측면에서도 완성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으로 이는 굉장히 중요했던 전투였지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의 전사로 이어집니다.

 

웅치와 이치 그리고 황진

영화 속에서 한산해전을 앞두고 육전에서도 동시에 전라좌수영 본영을 공격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워 고바야카와에게 협공해 줄 것을 간청하는 전령을 보내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역사적으로도 같은 시기와 날자(7. 7 ~ 7. 8)에 전주 공략은 팩트이며 이에 대항하여 전라도 관찰사 휘하의 민관군 합동 전력은 왜군과 일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 장소가 바로 웅치와 이치 고개였습니다.

전주 동쪽에 운장산(1126)이란 매우 험준한 산이 있고 그 위쪽에는 대둔산(878), 아래쪽에는 마이산(687)이 위치하고 있어 전주로 가기 위해서는 운장산을 피해 대둔산과 마이산 사이를 지나야 하는데 대둔산 쪽의 협곡이 이치, 마이산 사이의 협곡이 바로 웅치였던 겁니다.

영화 속에서는 웅치전투를 다루고 있는데 정확하게도 조선군은 황박의 지휘 아래 1선, 2선, 3선의 방어선을 준비, 이때까지 연전연패하는 조선군과는 다르게 용감하게 죽음을 불사하고 항전했지만 3선까지 뚫리며 황박의 죽음과 함께 패하게 되는데 승리 후 전주 코앞에서 전열을 다듬고 있던 안코쿠지를 황진의 지원군이 과감한 기습으로 대패시켰고 같은 날 황진 휘하의 장수들이 지키고 있던 이치에서도 분전하여 고바야카와를 물리치는 놀라운 전공으로 전라도를 수성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비록 영화 속에서는 아주 잠깐 황진 장군의 모습이 나오지만 훗날 지금까지도 일본 내에서도 가장 뼈아픈 패배로 웅치전투를 꼽았을 정도로 황진 장군이 보여준 무용과 전과는 반드시 재 평가받아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라고 할 수 있으며 전라도를 지켜낸 결정적 전투로서의 웅치와 이치 전투도 재조명받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역사적 사실과 이를 다시 잇기 위한 연출적 상상력이 매우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점이었고 무엇보다 학익진을 구성하기 위해 고민하다 마침내 수하에 있는 모든 장수들의 특성을 되새겨 적시적소에 배치, 진을 완성시키는 장면에서 지금의 전투명령과 같은 진의 완성에 소름 돋는 전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진영 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음에도 용맹하여 이순신을 잘 보좌했던 어영담(안성기)을 새롭게 조명한 점도 좋았고 와키자카를 비롯 일본군 장수들도 자국의 승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그려 생각 없이 악랄하고 비열하기만 한 고정적 클리셰에서 벗어난 점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순신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노량해전이 남았는데 모쪼록 전설로 기억될 만한 명작으로 제작되고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