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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멸망하고 주인공 혼자 생존과 외로움에 처절한 사투를 그리는 영화는 그 자체로 아주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고전인 찰톤 헤스톤 주연의 "오메가 맨"을 리메이크한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가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톰크루즈 주연의 "오블리비언(Oblivion)"이 베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무엇인지 딱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시시 때때로 불현듯 생각나는 장면들과 수능금지곡처럼 무의식 속에서 자꾸 되뇌게 하는 사운드는 이 영화를 그저 그런 킬링타임류의 SF액션 영화와 구분하게 하는 무서운 마법 같은데 오늘은 오블리비언을 특별하게 하는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잭 하퍼. 테크 49. 이공계 엔지니어인가?

영화정보
개요 : 2013. 4. 11 개봉 / 15세 관람가 / 액션, Sci-fi, 드라마 / 미국 / 러닝타임 : 124분 / 유니버설 픽처스 배급
감독 : 조셉 코신스키
출연 : 톰 크루즈(잭 하퍼), 올가 쿠릴렌코(줄리아), 모건 프리먼(말콤 비치), 안드레아 라이즈보로(빅토리아) 등
누적관객 : 151만 명

진짜 미래 환경을 보여주다

망한 지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영화를 본 관객은 물론 혹평을 하는 비평가들도 오블리비언의 미장센엔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황폐해진 지구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드문드문 보이는 과거 건물의 잔해가 앙상하지만 여타의 영화에서 보이는 끔찍한 느낌의 지구가 아닌 뭔가 정화되어가고 있다는 프레쉬한 느낌의 망한 지구 같아서 처음 볼 당시에도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느낌은 영화 전반에 걸친 깔끔한 모노톤의 컬러 톤 앤 매너가 적용된 결과로 대부분의 Sci-fi에서 채용되는 어둡고 음산한 느낌이 아닌 밝고 아주 잘 정돈된 느낌으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점도 독특하였습니다.
원초적 정화의 과정을 걷는 듯한 망한 지구환경이라면 잭과 빅토리아가 거주하는 스카이 타워의 주거환경은 첨단 그 차제인데 실제 미래 주거환경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고민된 가구,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세트여서 영화 미술팀의 아트웍에 감탄하였고 메인 데크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패널과 모션디자인은 SF장르는 왜 할리우드인가를 보여주는 증명과도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감탄했던 것은 잭이 타고 다니는 잠자리같이 생긴 버블 쉽과 안에 내장된 바이크 그리고 막강한 디펜더 드론인데 이는 실사기반의 Sci-fi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리얼리티 쾌감으로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작동하고 수리하고 이 과정에 쓰이는 배터리 모듈이나 작은 도구들까지 정말 잘 만들어진 소품으로 정말 실제하고 작동할 것 같은 상상을 일으키는 부분이라 감탄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스타워즈 이후 최고의 폴리

흔히 SF는 박진감, 긴장감, 폭발적인 효과음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사운드 디자인이 이뤄지는데 반해 오블리비언은 정 반대의 길을 보여줍니다.
노곤노곤하고 몽환적이며 느릿하게 스미는 사운드 트랙들이 각 씬에서 진중하고 장엄하게 연주되는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 사운드 트랙들은 특이하게도 프랑스 일렉트로닉 그룹 M83이 맡았다는 점도 굉장히 특별한 포인트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SF영화이기 때문에 포함되어야 하는 각종 기기의 미래적 사운드도 폴리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표현되었는데 특히 디펜더 드론의 각종 사운드는 소름 끼치도록 기계적인 날카로움으로 나타나기만 해도 온몸이 전율과 닭살이 돋을 정도로 독창적인 사운드로 스타워즈 R2D2의 작동음 이후에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개인적으로 해봅니다.

박진감 최고의 공중전과 전투씬

그때는 당연히 몰랐습니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훗날 <탑건 : 매버릭>의 감독이 될지...
하지만 개봉 당시도 느낄 수 있었던 점은 그냥 잘 만든 공중전투 장면 이상의 특별한 공중 전투씬이었다는 것인데
<탑건 : 매버릭>이 개봉한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공중전 연출의 장인으로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을 추앙하고 있음에 이견이 없을 것이지만 특별했던 점을 말하자면 버블 쉽은 VTOL 비행체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제트추진 같은 고속추진을 기본으로 하는 비행체여서 급선회나 정지간의 역추진 딜레이는 물론 하퍼가 받는 G의 어려움등 특성이 잘 나타난 반면 드론은 생김새대로의 비행 특성과 무인기의 독특한 자유로움으로 인한 동작등이 연출적 측면에서 더없이 잘 표현되어 두 비행체의 특성이 잘 묘사된 공중전에 매우 놀라웠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탑건 : 매버릭>에서 F-18 슈퍼 호넷의 실제 움직임과는 또 다른 특징이기 때문에 이 점을 포인트로 다시 감상하셔도 재미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오블리비언은 시놉상 특별할 것 없이 어느 정도 결론이 예상되는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기에 흥행은 물론 SF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도 썩 좋은 평은 얻지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블리비언, 즉 망각의 주인공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지만 꿈속에서 알 수 없는 존재의 여인으로부터 시작되는 의문의 해소와 그로 인한 각성의 결말이 SF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이 않은 장르와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이고 전반적으로 세트 미장센들이나 미래 미캐닉, 의상 어느 하나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리는 것이 돋보인 영화였습니다.
이제 곧 86인치 대 화면 TV를 구매할 예정인데 이때를 위해 준비해 둔 오블리비언 4K 영상으로 다시 감상할 날을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